배움장 - 0tak

다시 시작

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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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하반기는 참 다사다난했다.

 

이미 2024년 여름을 전후해서, 프론트엔드나 모바일 쪽으로 전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저 사이드에서 제품 전체를 관통하면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회사의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백엔드 주니어로서 이직을 시도했고 최종 오퍼를 받기도 했지만, 전향에 대한 의지가 커서 실례를 무릅쓰고 거절했다. 10월 즈음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에 지원했고 11월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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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2022년 말을 돌아본다. 졸업반이 된 후 전공을 연계해 문화재 보존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포기했고, 급하게 차선택을 찾았다. 당장 들어갈 수 있었던 백엔드 부트캠프에 지원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종종 노드나 파이썬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왔지만, 컴퓨터는 재미있는 취미일 뿐 돈은 전공을 살려서 벌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당시 컴퓨터가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특기였기 때문에 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2023년, 부트캠프를 수료하고, 채용 연계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티맥스로 운 좋게 취업하고…
예술학도로 지낸 몇 년 간 무수히 많은 고민과 이유가 필요했는데, 이제는 명분이 필요 없었다. 대신에 기술적인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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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나는 정말 백엔드 개발이 하고 싶은가? 뒤늦은 회의가 생겼다. 티맥스에서 수습 기간을 버텨내고, 2024년 상반기는 그 질문에 대한 뒤늦은 고민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학교에 다닐 동안에는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텍스트를 좋아했다. 시대가 어땠고 사회가 이랬으니 작가가 이런 작업을 했고, 작품이 그런 기능을 했다는 등 미술을 둘러싸는 맥락과 주변의 사람들을 함께 포착한다. 내가 써온 글들도 보통 그런 식이었다.

‘우리’ 팀의 프로덕트에 대해서도 자꾸 자연스럽게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든다. 사회의 개선되어야 할 점과, 불편함을 느끼는 유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덕트. 다만 백엔드 주니어의 입장에서는 프로덕트와 사회와 유저의 인터랙션에 관여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신규 기획이 들어와도 유저 경험에 대해서는 고민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 고민만 하는 사이 회사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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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불안도 크지만 iOS 공부는 그만큼 재미있다. 몇 가지 강의를 들어보면서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취업에 대한 강박보다는 프로덕트에 대한 욕심을 원동력으로 삼아보려고 한다.

“은총알은 없다.” 개발에도 인생에도. 맞을 때까지 쏠 뿐이다.